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은 여호와 상제의 아들이다. 박병역기자(truelook@hanmail.net) 2010.07.01 08:59:57
야훼 상제는 3황5제를 다스렸다
1.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은 여호와 상제의 아들이다.
태호복희씨는 안휘성의 烈山(열산)에서 살았으므로 열산씨라 한다. 또한 뒤에 厲山(여산)으로 옮겨 살았으므로 여산씨 또는 少典(소전)씨라 한다. 소전씨(복희)는 有娥(유아)씨의 딸 女登(여등,任似(임사:여호와)을 왕비로 삼아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아들 石年(석년)이 뒷날 염제신농이고 둘째 아들 늑이 뒷날 황제헌원이다.

明(명)나라 潘光祖(반광조)가 지은 강감금단에서 염제신농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소전국(복희)왕은 有娥(유아)씨의 딸 女登(여등,任似(임사), 安登(안등)을 왕비로 삼았다. 안등(여호와)은 神龍(신룡)이 감응하여 烈山(열산)에서 맏아들 石年(석년:염제신농)을 낳고 姜水(강수:섬서성 기산현 서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성을 姜(강)씨라 하였다.
석년(염제신농)은 火德(화덕)으로 임금이 되어 태호복희를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렸기 때문에 炎帝(염제)라 불렀다. 火德(화덕)은 관명이다. 염제 또한 열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열산씨, 여산씨, 또는 連山(연산)씨라 한다.
염제신농이 멸망한 뒤에 州(주), 甫(보), 甘(감), 許(허),戱(희), 露(노), 齊(제), 紀(기), 怡(이), 向(향), 呂(여) 등은 모두 다 姜(강)씨 성의 후손들이다, 염제신농은 아들 다섯 명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딸의 이름이 女娃(여왜)이다. 또한 염제는 이미 陳倉(진창)에서 살았는데 群臣(군신)들이 제왕으로 옹립하였다.
2. 제8세 안부련환웅은 염제신농이다.
배달국 제8세 안부련 환웅(염제신농)이 원년 입술(BC3239)년에 황제의 제위에 올랐다. 73년 갑술(BC 3167년)에 소전(少典:복희) 황제의 명을 받아 강수(姜水)에서 군사를 감독하였다. 태호복희(소전)의 아들 염제신농씨가 곧 제8세 환웅안부련 이시다.
염제신농(안부련환웅)은 일찍이 백가지 풀을 가지고 약을 만들었다. 그 후 열산(烈山)으로 옮겨와 살면서 백성들이 필요한 물건과 서로 바꾸어 사용하게 하므로서 교역이 활발하여 생활이 편리하였다. 신농씨(안부련 환웅)는 강수(姜水)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을 강(姜)씨라 하며 복희씨의 여동생 여호와 상제 뒤를 그의 아들 염제가 계승하였다. 염제신농은 73년을 제위하고 수명은 93세이었다. [단군조선 47대사]
염제의 아내 聽요(청요)가 炎居(염거)를 낳고, 염거는 節竝(절병)을 낳고, 절병은 戱器(희기)를 낳고 희기는 祝融(축융)을 낳았다. 축융이 姜水(강수)에 내려와 살면서 共工(공공)을 낳고 공공은 術器(술기)를 낳았다. 共工(공공)은 后土(후토)를 낳고 후토는 열鳴(열명:시간의 신)을 낳았다. 염제신농은 원년 계미(BC 3218년)에 진단국의 火德王(화덕왕)으로 제위 했다.
염제신농은 태호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이 도읍한 陳(진)에서 도읍지를 曲阜(곡부)로 옮기고 140년 동안 재위하고 붕어하셨다. 陳(진)은 지금의 開府(개부:태원)이고 陳州(진주)이다. 補史記(보사기)에 이르기를 염제신농의 아버지는 少典(소전:복희)이고 어머니는 유와씨의 딸 안등(여호와)이다. 그의 어머니는 神龍(신룡)이 감응하여 염제를 낳았다.
염제신농은 나무를 다듬어 호미와 쟁기를 만들어 밭을 갈아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 약초를 두드리면 그 약초의 독성 유무를 알 수 있는 赭鞭(자편) 채찍으로 약초를 감별하여 백가지 약초로 각양 각색의 약을 만들어 신농은 의약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다섯 줄의 弦瑟(현슬: 거문고)를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였다. 또한 그는 8卦(괘)로 64爻(효)도 만들었다.
염제신농은 처음 陳(진)를 계승하고 뒤에 曲阜(곡부:산동성)로 옮겨서 살았다. 120년을 재위하고 돌아가셨는데 長沙(장사)에 장례 하였다. 염제신농은 본시 열산(안휘성 서북)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左氏(좌씨)가 말하기를 열산씨의 아들 또한 厲山(여산)씨라 하였는데 이 사람이 뒷날 천하를 통치하였다. 염제신농은 奔水(분수)씨의 딸 聽詙(청발)을 부인으로 삼고 아들 哀(얘)를 낳았다.

진단국은 제 1세 태호복희와 여호와상제께서 개국하고부터 제 2세 맏아들 염제신농이 계승하고 제 3세 帝臨魁(제임괴), 제 4세 帝承(제승), 제 5세 帝明(제명), 제 6세 帝宜(제의), 제 7세 帝來(제래), 제 8세 帝衰(제쇠) 炎帝楡罔(염제유망)에 이르기까지 무릇 530년이고 염제유망이 멸망한 후에 황제헌원씨가 일어났다.
[진단국] 염제유망의 포악한 정치로 국력이 쇠약해 지자 청구국의 치우천왕은 81명의 형제를 거느리고 葛盧山(갈로산)에서 쇠를 캐어 창, 투구, 갑옷 등 처음으로 쇠로 병기를 만들어 전쟁이 시작되자 1년 동안에 모두 9제후의 땅을 함락시켰다.
치우천왕은 다시 병기를 정비하여 空桑(공상)을 점령하여 12나라를 합병하고 제후로 삼아 공상에서 위세를 떨치자 황제헌원의 군사와 치우천왕과 전투가 벌어졌다. 치우의 성은 姜(강)씨 이므로 염제신농의 후손이 된다.

▲ 야훼하느님의 아들 염제와 황제헌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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