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불교 유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유적물입니다. 박병역기자(truelook@hanmail.net) 2010.07.21 14:32:31
석가세존은 대한민국 조상이다
(1). 중국의 불교 유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유적물입니다.
중국의 석굴 중에 돈황의 막고굴(莫高窟), 산서성의 운강석굴, 낙양의 용문석굴, 사천성의 대족석굴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사천성 중경시 북동쪽에 위치한 대족석굴은 북산, 보정산, 남산, 석문산, 석전산 오산(五山)에 76개소의 석굴에 6만여점의 조각상이 운집해 있습니다. 이중 보정산 석굴군은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조각상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 가야의 수로왕비는 남천축국 공주이며 허황옥의 시호(諡號)가 보주태후(普州太后)라 했습니다. 보주(普州)에 대해 한양대 김병모 교수는 중국 사천성 안악현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중국 사천성 대족석굴은 가야의 유적물로 확실히 입증(立證)되었습니다.

▲ 보정산(寶頂山) 석굴의 조각상(가야국 수로왕의 아들 7불상)
(2). 중국의 석굴유래는 엉터리로 밝혀졌다.
중국 낙양 용문 석굴은 북위(北魏), 수(隋), 당(唐)에 이르는 400년간에 걸쳐 만들어진 석굴이라 했다. 돈황의 막고굴은 동진(東晋)의 영화 9년(353), 또는 전진(前秦)의 건원 2년(366)때의 석굴이고, 산서성 운강석굴은 북위왕조때 세웠다는 것이다.
(3). 중국은 불교(佛敎)를 신앙하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삼신(여호와 옥황상제, 하느님)을 숭배하고, 불교를 신앙했으나 중국은 도교, 유교를 신봉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국은 불법(佛法)을 믿지 못하게 하고 수많은 佛像(불상)을 파괴하였으며, 전국의 僧徒(승도)들을 무참히 참살하여 불교를 멸종시킨 三武一宗(삼무일종)의 法亂(법난)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4). 중국은 불상을 파괴하고 승도를 멸종시켰다.
중국 불교사상 네 차례에 걸친 대규모 불교 탄압을 三武一宗(삼무일종)이라 지칭합니다. 즉 北魏(북위)의 太武帝(태무제)와 北周(북주)의 武帝(무제)와 唐(당) 武帝(무제)의 세 사람의 武(무)자 廟號(묘호)를 지닌 황제 및 宗(종)자를 지닌 5대 後周(후주)의 世宗(세종) 시대에 행해진 불교 탄압을 일괄하여 三武一宗(삼무일종)의 法亂(법난)이라 지칭합니다.
北魏(북위)의 拓跋燾(척발도)는 서기 408-452년의 사람으로 北魏(북위)의 황제며 시호는 太武帝(태무제)이며 鮮卑族(선비족)이다. 道武帝(도무제) 拓跋珪(척발규)의 손자이고 柔然(유연)을 몰아내고 夏(하) 北燕(북연)등을 멸망시켜 북방을 통일했으나 서기 450년에 宋(송)을 공격하다 대패하였다. 在位(재위)에 있으면서 漢族(한족)출신 崔浩(최호)등을 등용하여 佛敎(불교)를 탄압하다 후에 宦官(환관)인 宗愛(종애)에게 살해되었다.
寇謙之(구겸지)는 寇天師(구천사)이며 北魏(북위)의 도사로서 도교의 한 지류인 新天師道(신천사도) 일명 北天師道(북천사도)를 창시한 사람이며 玆(자)는 輔眞(보진)이다. 북경 昌平(창평)출신으로 18세에 崇山(숭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자칭 太上老君(태상노군)에게서 雲中音誦新科之誡(운중음송신과지계)를 받았다고 떠들었다. 척발도의 신임을 얻어 大臣(대신) 崔浩(최호)와 함께 불교 탄압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고 도교의 실현에 앞장선 인물이다.
崔浩(최호--450년)는 북위를 건국한 拓跋氏(척발씨)를 섬겨 司道(사도)의 벼슬에 오른 大臣(대신)으로 도사 寇謙之(구겸지)의 抑佛(억불)을 지지하여 太平眞君 7년(446년)에 廢佛令(폐불령)을 내리게 하였으며 후에 척발씨의 秘史(비사)를 국사에 수록하였다가 國惡(국악)을 폭로한다는 이유로 태무제 척발도의 노여움을 받아 삼족 128명과 함께 처형되었다.
서기 845년(會昌(회창 5년) 武宗(무종)은 대규모 廢佛(폐불)을 단행하여 불교 사원 4,600개를 폐쇄하고 승려 26만 여명을 환속시켰으며 사원 소유의 토지 수만 頃(경)을 몰수하고 노비 15만 명을 석방하였다. 이른바 三武一宗(삼무일종)의 法亂(법난)가운데 하나입니다.
석가세존은 대한민국 조상입니다
[1]. 천축국은 인도가 아니고, 고조선입니다.
따라서 석가세존은 대한민국의 조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축(天竺)국을 지금의 印度(인도)로 인식하고 있으나 천축은 방위에 따라 5천축이 있으며 각각 수십 개의 후국(侯國)을 거느리고 있었다. 천축은 중앙 아시아 뿐만 아니라 폐르샤 에집트와 현재 이란. 파키스탄. 인도까지 포함하며 돈황의 서쪽과 동파키스탄의 여러 나라를 말한다. 고로 동파키스탄, 이란 서쪽의 파밀 고원 남쪽은 곤륜 산맥 북쪽은 천산 산맥에 둘러싸인 타림 분지를 말한다. 라고 불교 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석가세존이 계셨던 중조선(中朝鮮)은 인간 세상을 불국토(佛國土)로 이룩하였던 것입니다.
북부여 해모수 천제(天帝)가 BC 194년 돌아가시자 드디어 5가들은 대장군 탁(卓)과 함께 월지(月支)에 이르러 나라를 건국하여 중마한(中馬韓)이라 칭했다. 중 마한의 5가들은 BC 158년 오손(烏孫)의 침략을 받고 다시 남하하여 5천축국으로 번성했다.
대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불교의 교조(敎祖) 석가세존을 인도(印度)의 성인(聖人)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현 인도는 옛 아유타국(阿隃陀國)이며, 5천축국 중의 남천축국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조선을 천축국]이라 칭했기 때문에 당연히 석가세존은 우리나라 조상으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석가세존은 가야국, 신라, 진단국(조선)에서 설법하셨습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탄일은 昭王(소왕) 26년 갑인(BC 1,027년) 4월 8일 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수로왕(서기 42~199년)시대에 생존해 있었겠는가? 하고 반문할 것입니다.
[2]. 석가세존은 가야국에서 설법하셨다
금관국(金官國)은 駕洛國(가락국), 伽倻國(가야국)이라 한다. 伽倻國(가야국)은 加耶(가야),狗耶(구야), 加良(가량), 加羅(가라), 伽落(가락),이라고도 쓴다. [석보상절] 세존께서 拘耶尼國(구야니국:가야국)의 “파타화보살“을 위하여 고행반야(苦行般若)를 설법하셨는데 그 때 부처님의 연세는 설흔 다섯이시며 穆王(목왕) 9년 戊子年(무자년: BC 993년)이였다. 즉 석가세존은 拘耶國(구야국:가락국)에서 설법하셨습니다.
[삼국유사 제 3권 탑상 제4 魚山佛影(어산불영)]: 古記(고기)에서 이르기를 萬魚山(만어산)은 옛날에 慈成山(자성산)이라 하였다. 또한 阿耶斯山(아야사산) 곁에 呵羅國(가라국)이 있었다. (阿耶斯(아야사)는 摩耶斯(마야사)산이며, 이것이 萬魚山(만어산)이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 사람이 곧 首露王(수로왕)이 되었다. 이 당시 국경내에 玉池(옥지)라는 연못 속에 독용이 살고 있었는데 萬魚山(만어산)에 五羅刹女(5나찰녀)가 왕래하면서 서로 사귀었다. 이러한 사유로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동안 5곡이 익지 못하였다. 왕은 주문으로 금지시키려 하였으나 금지시키지 못하자 부처님에게 稽首(계수)하고 청하여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후에 나찰녀들이 五戒(5계)를 받고는 그러한 피해는 없어졌다. 이러한 사유로 동해의 물고기와 용은 드디어 돌맹이로 화하여 마을에 가득차 있었다. 이 각 돌은 磬(경쇠)가 되어 종소리가 났다.
(이상은 古記(고기)에 기록된 것이다) 또 살펴보면 고려 明宗(명종) 10년 경자(1180년) 처음 萬魚寺(만어사)를 창건할 때 寶林(보림)이 임금님에게 올린 글에서 칭한 것을 보면 萬魚山(만어산) 중에 기이한 유적은 북천축 訶羅國(가라국)에 부처님의 佛像(불상)에 대한 같은 전설이 3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萬魚山(만어산) 곁에 있는 粱州(양주) 경계의 玉池(옥지) 연못 역시 毒龍(독용)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곳이 이곳이고 그 둘째는 때때로 강변에 일어난 雲氣(운기)가 산 마루에 까지 이르렀는데 그 구름 속에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 셋째는 부처의 影像(영상)이 서북쪽 盤石(반석)에 있었는데 이곳은 항상 물이 괴어 없어지지 않았다. 이곳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사(옷)를 빨던 곳이라 하였다.
이상은 寶林(보림)이 논설한 것이다. 지금 내가 瞻禮(참례)하고 보니 역시 두 가지는 분명히 믿을 수가 있다. 마을에 돌이 되어 무릇 3분지 2가 모두 金玉(금옥)소리가 난다고 한 것이 그 하나이고 멀리서 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고 혹 나타났다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北天竺(북천축)의 글은 후에 갖추어 수록하겠다.
可字函觀佛三昧經 第七卷(가자함관불삼매경 제7권)에서 이르기를 축건 태자 석가 세존께서 옛날에 訶羅國(가라국)의 古仙山(고선산: 萬魚山(만어산)과 담복花林(담북화림) 毒龍(독용) 곁의 靑蓮化泉(청연화천) 북쪽 羅刹穴(나찰혈) 가운데에 있는 阿那斯山(아나사산) 남쪽에 도착하셨다. 이때 나찰혈에 살고 있던 5나찰들이 女龍(여룡)으로 화하여 毒龍(독용)과 교접 할 때 독룡은 다시 우박을 내리고 나찰은 난폭한 행동을 하여 飢饉(기근)과 疫疾(역질)이 4년 동안 계속되었다. 왕은 두려워 神祗(신지)에게 기도를 올리게 하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나 아무 도움이 없었다. 이때 지혜가 많고 총명한 梵志(범지)가 대왕에게 아뢰기를 가비라국 淨飯王(정반왕)의 태자가 지금 道(도)를 이루어 호를 釋迦文(석가문)이라 합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큰 기쁨을 느끼고 부처님을 향하여 禮(예)를 올리며 말하기를 오늘날 불교가 이미 일어났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 나라에는 아직까지 오시지 않으십니까? 이때 석가여래는 여러 비구들에게 칙령을 내려 육신통을 얻은 자를 부처님을 따르게 하여 那乾訶羅國王(나건가라국왕) 弗婆浮提(불파부제)의 청을 받아 주기로 하였다.
이때 세존은 정수리에서 밝은 빛을 펼쳐 일만 명의 여러 大化佛(대화불)을 만들어 나건가라국에 도착하였다. 이때 용왕과 나찰녀는 五體(5체:온몸)을 땅에 던져 부처님에게 戒(계) 받기를 청하자 부처님은 곧 三歸五戒(3귀5계)를 설법하시었다. 용왕은 이 설법을 듣고 나서 다 꿇어 앉아 합장하고 세존에게 권고하기를 항상 이 인간 세상에 계시기를 청원하옵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으시면 우리들은 악한 마음이 있어 아누보리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 범천왕이 다시 돌아와 부처님을 공경하고 청원하였다. 婆伽婆(파사파:부처)께서는 미래의 세상 모든 중생을 위하시기 때문에 이 작은 용들만을 위하지는 마라 주십시오 라고 하니 백천 범왕들도 모두 다 이러한 청을 하였다. 이때 용왕들이 七寶臺(칠보대)를 갖고 나와 여래님에게 바치니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칠보대는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으니 너희들은 지금 나찰들이 살고 있는 석굴로 가져가서 시주하도록 하여라.
용왕은 이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이때 여래님은 용왕들을 위로하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들의 청을 받아 너희들의 석굴 속에서 1500년 동안 앉아 있겠노라.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자 곧 몸을 솟구쳐 돌 속으로 들어가시니 그 돌은 마치 명경의 유리 거울 같이 사람들의 얼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모든 용들도 모두 다 나타났다.
부처님께서 돌 속에 있으니 마치 영화 속의 사람처럼 나타나 밖에서 볼 수 있었다. 이때 모든 용들도 합장하고 매우 기뻐하였다. 이곳을 떠나지 않을 때 까지는 부처님이 항상 나타났던 것이다 이때 세존은 결가부좌하고 석벽 속에 앉아 계신 모습을 중생들이 볼 때 멀리서 바라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의 제천들이 공양하면 부처님의 영상 역시 설법하였다. 또 이르기를 부처님이 계신 바위 위를 밟으면 곧 금옥 소리가 들렸다.
高僧傳(고승전)에서 이르기를 惠遠(혜원)이 듣기를 천축국에 부처님의 影像(영상)이 있었다. 옛날에 용들을 위하여 남겨 놓은 影像(영상)이 북천축의 月支國(월지국) 那竭呵城(나갈가성) 남쪽 古仙人(고선인)의 石室(석실) 속에 있었다. 또한 法現(법현)의 西域傳(서역전)에서 이르기를 那竭國(나갈국)의 국경 나갈성 남쪽에 반유순이나 되는 石室(석실)이 있고 博山(박산) 서남쪽 石面(석면)에 부처님의 영상이 있었다. 이 석굴은 10여보 쯤에서 보면 부처님의 진짜 형상이 밝게 빛나 보이고 멀리서 볼수록 희미하게 보였다.
모든 나라의 국왕들이 畵工(화공)을 보내서 이 眞影(진영)을 그리려고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비슷하게 그릴수가 없었다. 고려국에서 전한 말에 의하면 賢劫(현겁)의 千佛(천불)이 모두다 이곳에 남겨놓았다. 하고 이 영상이 있는 서쪽 100보쯤 되는 곳에서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머리를 깍고 손톱을 깍던 곳이라 하였다.
星函西域記第二卷(성함서역기제2권)에서 이르기를 옛날 여래님께서 인간 세상에 계실 때 이 용이 사람이 되어 소를 양육하는 목동이 되어 왕에게 우유젖을 올리다 실수를 저질러 꾸지람을 받게되자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고서 돈으로 꽃을 사서 부처님에게 공양을 하였다. 그리고 솔도파(부처)에게 授記(수기)를 원하기를 부디 惡龍(악용)이 되어 이 나라가 파멸되도록 국왕을 해치게 하여 주소서 하고는 石壁(석벽)으로 달려가 몸을 던져 죽었다, 드디어 이 굴속에 살고 있는 대용왕이 되어 악한 마음을 일으키자 여래께서 이를 감별하고 신통력으로 몸을 변신하여 이 곳에 오시니 이 용이 부처님을 보자 독한 마음이 없어졌다.
드디어 부처님에게 不殺戒(불살계)를 받고 청하기를 여래님께서 항상 이 굴에 계신다면 나는 항상 공양을 올리며 공경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장차 적멸에 들어갈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들을 위하여 내 影像(영상)을 남겨 둘 것이니 너희들이 만약에 독한 마음이 생각나면 항상 내 영상을 바라보면 독한 마음은 당장 중지될 것이니라, 라고 말씀을 마치고 부처님은 石室(석실)로 들어 가셔버렸다. 멀리서 바라보면 즉시 나타나고 가까이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돌 위를 발로 차서 칠보가 되었다. 하였다)
이상은 모두다 經文(경문)에 수록된 것을 대략 적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해동 사람들은 이 산 이름을 阿那斯(아나사)라 불렀으나 摩那斯(마나사)라고 해야 마땅 할 것이다. 이 摩那斯(마나사)가 바로 萬魚山(만어산)이다. 대개 북천축의 古事(고사)를 인용하여 산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본문 끝.] 상기와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리나라에서 손톱을 깍았다. 또한 서기전 19년에 가락국에서 설법하셨던 것입니다.
[3]. 석가세존은 신라국에서 설법하셨다
[삼국유사 제4 塔像(탐상) 迦葉佛宴坐石(가섭불연좌석)] 玉龍集(옥룡집),慈藏傳(자장전)과 諸家傳記(제가전기)에서 이르기를 신라 월성 동쪽, 용궁 남쪽에 “가섭불 연좌석”이 있다. 이곳은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 절터이며 지금의 황룡사는 곧 일곱 절 중의 하나이다. 국사를 살펴보면 진흥왕은 즉위 12년 연호를 개국(開國)이라 하고 황제로 등극하였다. 즉위 14년 개국 3년 계유(553년) 2월 월성 동쪽에 新宮(신궁)을 세웠는데 이곳에서 황룡이 나타나자 왕은 궁전을 개조하여 “황룡사”라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 4 진흥왕 편> 27년(서기 566년) 봄 2월 祇園寺(기원사)와 實際寺(실제사)의 두 절을 완성하고 왕자 銅輪(동륜)을 왕태자로 삼았다. 이 해에 皇龍寺(황룡사) 절의 공사를 마쳤다. 迦葉佛宴坐石(가섭불연좌석)은 佛殿(불전) 후면에 있는데 일찍이 한번 본 일이 있다. 돌의 높이는 5,6척이며, 그 둘레는 겨우 서발 밖에 되지 않고 정상은 평평하였다. 진흥왕이 이 절을 세운 이후로 두 번이나 화재가 일어나 돌이 갈라진 곳이 있다. 그래서 절의 중이 여기에 쇠를 붙혀서 보호하였다. [본문 끝.]

▲ 보정산 석굴의 가야국 수로왕 아들 7불(佛)조각상 앞줄 여인은 허황옥 황후상?
가야국 수로왕의 아들 금왕광불(金王光佛), 왕상불(王相佛), 왕행불(王行佛), 왕향불(王香佛), 왕성불(王性佛), 왕공불(王空佛) 등 일곱 생불(生佛)이다.
뒤쪽 와불(臥佛)은 석가세존이라 사료된다.

▲ 보정산(寶頂山) 성수사(聖壽寺)는 당말 조지봉이란 사람이 92세로
작고할 때까지 70년간에 걸쳐 기획, 제작, 감독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고려 금관주지사(金官州知事)이신 승려(僧侶) 탄영(坦瑛;서기 1650)이 저술한 왕산사기(王山寺記)에서 [신라 제5대] 파사익왕(婆娑匿王;서기80~112년)묘의 비명(碑銘) 중에 [신라]의 억만장자(億萬長者) 수달(須達)이 [파사익왕의 지타(祗陀) 태자의 동산에 황금으로 깔았다는 지원정사(祗園精舍)에 대한 일화의 불경을 소개합니다. 祗園亭舍(지원정사)를 일명 祗樹給孤獨園(지수급고독원)이라 한다. 석가세존이 舍衛國(사위국)에 오실 적에 수달이 지은 亭舍(정사)마다 들러시고 길에서 사람들을 제도하신 말씀은 그지없었다.
(1). 舍衛國(사위국)은 室羅(실라)이다
舍衛國(사위국)은 室羅(실라)이다, 즉 新羅(신라)라 아니고 무엇인가? 舍衛國(사위국)에 대하여 梵語(범어:sravasti) 室羅筏(실라벌:서라벌), 室羅筏悉底(실라벌실저), 尸羅婆提(시라파제)라 音譯(음역)함. 聞者(문자), 聞物(문물), 豊德(풍덕), 好道(호도)등이라 번역한다. 중천축의 교살라국 都城(도성)이며 부처님이 계실 때는 파사익왕과 琉璃王(유리왕)이 살아 있었다. 城(성) 남쪽에 유명한 祇園精舍(지원정사)가 있다. <불교사전 참조>
[석보상절] 사위국(실라)의 대신 수달은 어질고 재물이 많은 억만장자이었으나 남에게 보시하기를 즐겨하며 외롭고 가난하여 불쌍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어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호를 給孤獨(급고독)이라 하였다. 급고독의 長者(장자)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여섯 아들은 벌서 아내를 얻었으나 막내 아들은 어린아이 때부터 얼굴 모습이 아름다워 각별히 사랑하여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며느리를 얻으려고 바라문에게 말하기를 어디에 아주 좋은 딸이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이가 있겠는가? 내 아들을 위하여 며느리를 얻고 싶구려 하시었다.
바라문이 그 말을 듣고는 고운 딸을 얻으려고 구걸하며 마갈타국의 왕사성에 갔더니 그 성안에 한 大臣(대신)의 護彌(호미)라 하는 사람이 어질고 발심을 하기에 바라문은 그 집에 가서 양식을 빌었더니 그 나라의 법은 보시할 때는 반드시 소녀를 내 보내어 주도록 되어 있었다. 그 집의 딸이 쌀을 가지고 나오기에 바라문이 보고 마침내 이 여인이야 말로 내가 얻고자 하는 마음에 맞다 는 생각이 들어 그 딸에게 묻기를 그대의 아버님은 계시는가 대답하기를 계십니다. 바라문이 묻기를 내가 좀 보자고 여쭈어 주세요
그 딸이 들어가 이르매 호미 長者(장자)가 나오기에 바라문은 안부를 묻고 말하기를 사위국에 한 대신 수달이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르신은 알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호미가 말하기를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바라문이 말하기를 사위국 중에서 가장 벼슬이 높고 어질기가 이 나라의 그대와 같은 사람이며 한 사랑하는 막내 아들이 생김새며 재주가 뛰어나니 그대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겠습니까?
호미가 말하기를 그리하겠습니다. 그때 마침 장사하는 이가 사위국으로 갈 사람이 있어 바라문이 글을 올려 수달에게 보내었더니 수달은 기뻐하면서 波斯匿王(파사익왕)에게 가서 사유를 여쭙고 재물을 많이 실어 왕사성으로 가면서도 길에서 가난한 사람을 보면 모두다 보시하여 베풀어주었다. 수달이 호미의 집으로 갔더니 호미는 기뻐하며 마중을 나와 영접하기에 서로 만나보고 그 집으로 들어갔더니 그 집에서는 음식을 만든다고 소란스러워 수달이 호미에게 묻기를 주인이 무슨 음식을 손수 만들고 있습니까? 하였더니 태자님을 초청하여 이바지하려 하십니까 大臣(대신)들을 초청하여 이바지하려 하십니까? 하였더니 호미가 말하기를 그것이 아닙니다. 수달이 또 묻기를 혼인을 위하여 아니면 친척들을 초청하여 이바지하려 하십니까? 호미가 말하기를 그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스님을 초청하려고 합니다.
수달은 부처님과 스님을 위한다는 말을 듣고는 소스라치며 저절로 마음에서 기쁜 뜻이 일어나 다시 묻기를 어찌 부처님이라 합니까? 그 뜻을 말씀하여 주십시요 대답하기를 그대는 아직 듣지를 못하셨습니까? 정반왕의 아드님이신 悉達(실달:싯다)이라는 분이 태어나시는 날 하늘로부터 설흔 두 가지의 상서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만 명의 신령이 모시고 호위를 하였으며 잡은 것도 없이 일곱 걸음을 걸으시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말씀하시었다. 몸체에서 금빛이 났으며, 32상 80종호를 갖추시었다. 금륜왕이 되시여 4천하를 맡아 다스릴 수도 있었지만 늙고 병들어 죽는 사람을 보시고 세간을 싫게 여기시여 출가하시여 도리를 닦기로 6년을 고행하시고 정각을 이루어 魔王(마왕)의 兵馬(병마) 십팔억만명을 항복시키고 오셨으며 광명을 세계에 크게 비추시여 삼세의 일을 다 깨달으신 분을 부처(佛)라 합니다.
수달이 또 묻기를 어째서 중(스님)이라 합니까?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 成道(성도)하시던 날 범천이 轉法(전법)하여 주소서 하고 청원하셨습니다. 波羅捺國(파라내국:환국)의 녹야원에 가시여 僑陳如(교진여)등 다섯 사람을 제도하셨으며 다음으로 율비가섭 삼형제의 무리 일천 사람을 제도하셨으며 다음은 사리불과 목건련의 무리 500명을 제도하셨으며 이 사람들은 모두 神足(신족)이 자재하여 중생들의 복 밭이 됨으로 중(스님)이라 합니다.
수달은 이 말을 듣고 부처님에게 발심 할 마음을 일으켜 언제 밤이 새면 부처님을 찾아가 뵙겠다고 생각을 하였더니 정성이 지극하니 갑자기 밤눈이 훤히 열렸으나 길을 찾아 부처님에게로 가는 도중에 城門(성문)에 다 달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祭壇(제단)을 보고 절을 하다가 갑자기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을 잊으니 도로 밤눈이 어두워져 버렸다.
그때 생각하기를 공연히 밤에 가다가 귀신과 짐승을 만나면 무섭기도 하니 무엇 때문에 밤에 내가 걷고 있을까 하고 뉘우쳐 도로 돌아가려고 하자 전날에 나의 벗이 죽어 하늘에 있다가 내려와 수달에게 말하기를 수달아 뉘우치지 말라 나는 지난 날 너의 벗이다. 너는 부처님의 법을 들으면 그 덕으로 하늘나라에서 태어나 門神(문신)이 될 것이다. 너는 부처님을 찾아가 뵙게 되면 좋은 일이 그지없으리라 4천하의 보배를 모두 다 얻는 것보다 부처님을 향하여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 걷는 것만 못하리라 하였다.
수달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기뻐 다시 깨달아 세존님을 생각하였더니 눈이 도로 밝아짐에 길을 찾아 세존님에게 갔더니 세존님은 수달이 찾아 올 줄을 미리 알으시고 밖에 나와 걷고 계셨다. 수달이는 바라보고 못내 반가와 하면서도 부처님을 처음 뵙는지라 예수를 몰라 바로 들어가 묻기를 구담이시여 안부를 여쭈오니 편안하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올렸더니 세존께서 방석을 내어 주시면서 앉게 하셨다.
그때 首陀會天(수타회천)이 수달이 버릇이 없는 것을 보고 네 사람이 되돌아 와서 세존에게 예수하는 법을 꿇어서 안부를 여쭙고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돌고 한쪽에 앉았다. 그 제사 수달이도 알아차리고 공경하는 법이 이러한 것이로구나 생각하고 즉시 다시 일어나 네 사람이 하는 모양으로 예수를 다시 하고 한편으로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 실라의 수달이를 위하여 四諦法(사체법:苦集滅道(고집멸도)을 설법하시니 듣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須陀洹(수다원)의 지위를 이루었다. 그때 사위국(실라)의 사람들은 邪曲(사곡)한 도리를 믿고 있어서 정법의 가르침은 어려웠다. 수달이 부처님에게 사뢰기를 여래님이시여 우리나라에 오셔서 중생들의 사곡한 마음을 덜게 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출가한 사람은 세속의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그대의 나라에는 精舍(정사)가 없으니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하시니 수달이 사뢰기를 내가 가이 이루어 내겠습니다. 수달이 하직 인사를 하고 제 막내 아들도 장가를 들이고 제 나라로 돌아 갈적에 부처님을 다시 찾아뵙고 여쭈기를 사위국에 돌아가 精舍(정사)를 이루어 내겠으니 제자 한 사람을 함께 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면 그의 말을 들어 만들고 싶습니다.
세존께서 생각하시기를 사위국의 바라문은 악독하여 다른 사람이 가면 못이길 것이니 사리불이 제일 총명하고 신족도 가지고 있으니 사리불이 가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하시며 사리불을 수달이와 함께 쫓아가라 하셨다. 길을 걸으며 수달이 사리불에게 묻기를 세존은 하루에 몇리를 걸으실 수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하루에 20리를 걸으실 수 있으며 전륜왕이 다니시는 것과 같습니다. 수달은 왕사성에서 부터 사위국 까지 부처님께서 오시는 길 20리마다 한 亭舍(정사)를 지어 사람까지 그 곳에 두었다.
사위국에 돌아와 精舍(정사)를 지을 터를 얻으려 다녔으나 마땅한 곳이 없고 오직 태자 祗陀(지타)의 동산이 땅도 평평하고 나무도 무성하였다. 사리불이 말씀하시기를 마을에서 멀면 걸식하기가 어렵고 너무 가까우면 깨끗하지 못할 것이니 동산이 매우 알맞습니다. 라고 하시니 수달은 매우 기뻐하며 태자에게 가서 여쭈기를 이 동산을 사 가지고 여래님을 위하여 정사를 이루어 내고 싶습니다. 태자는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무엇이 부족하여 팔겠소 오로지 이 동산은 나무가 좋아 거닐며 즐기는 땅입니다. 수달이 다시 청원하자 태자는 아까운 마음에 말하기를 금으로 이 땅에 깔고 틈이 없게 하면 이 동산을 팔겠습니다.
수달이 말하기를 말씀 하신대로 하겠습니다. 태자가 말하기를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이요, 수달이 말하기를 태자님 말씀은 법이라 거짓말을 아니 하는 것이니 말씀을 고치시나 당연히 팔아야 될 것입니다. 하고는 관청에 판결을 가려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때 수타회천에서 생각하기를 나라의 신하들은 태자편을 들면 수달의 소원을 못 이룰 것 같아 한사람이 도와야 하기에 내려 보내 분간하여 태자께 말하기를 태자님은 거짓말을 못하시는 것이니 뉘우치지 마십시오, 태자는 어쩔 수 없이 팔기로 하였다.
수달은 기뻐하며 코끼리에 금을 실어 여든 頃(경)의 땅에 즉시 다 깔고 조금은 못다 깔고 수달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태자가 묻기를 아까운 뜻이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그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를 어느 창고의 금이 알맞게 깔릴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태자가 생각하기를 부처님의 덕이 얼마나 지극하기에 이 사람이 보배를 저토록 아끼지 아니할까 여기며 수달이에게 말하기를 금을 더 내지 마세요 땅은 그대의 몫에 두고 나무는 내 몫에 두어 두 사람이 어울러 정사를 만들어 부처님에게 받혀 올립시다 라고 하였다.
수달은 대단히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 정사를 지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더니 그 나라의 六師(육사)들이 듣고 왕에게 여쭈기를 長者(장자) 수달이 祗陀太子(지타태자)의 동산을 사서 瞿曇沙門(구담사문)을 위하여 精舍(정사)를 지으려 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 모여서 재주로 겨루어 저들이 이기면 정사를 짓도록 하고 이기지 못하면 못 짓게 하여 주소서 라고 하였다.
왕이 수달이를 불러 말하기를 六師(육사)들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그대는 “ 구담사문 “의 제자에게 들려 재주를 겨루어 보겠는가? 물어 보아라 하셨다. 수달은 집에 돌아와 때묻은 옷을 입고는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 이튿날 사리불이 보고 물은즉 수달은 그들의 뜻을 말하니 사리불이 말하기를 걱정하지 마십시요 육사 무리들이 염부제에 가득 하여도 내 발에 있는 털 하나도 못 움직일 것이니 무슨 일을 겨루려 하는지 제 들이 하고 싶은 대로하라고 하십시요 수달은 기뻐하며 향탕에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는 즉시 왕에게 달려가 말하기를 六師(육사)들이 겨루려 하려면 제하고 싶은 대로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때 육사들은 나라에 령을 내려 이후 칠일 날 성밖의 넓은 땅에서 사문들과 모여서 재주를 겨루리라 하였다. 그 날에 다 달아 금북을 치니 나라 사람 18억 명이 다 모여들었다. 사위국 사람이 18억이고 그 나라의 법은 북을 쳐서 사람을 모았는데 놋쇠 북을 치면 20억의 사람이 모이고 은북은 14억이고 금북을 치면 18억명이 모였다. 육사의 무리는 3억만 명이었다. 그때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다 모여 왕과 육사를 위하여 높은 자리를 만들고 수달은 사리불을 위하여 높은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 사리불은 한 나무 밑에 앉아서 선정에 들어가 모든 뿌리를 끊고 고요히 앉아 생각하기를 오늘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요사스럽고 바르지 못한 도리를 배운지 오래되어 자신들이 높다고 생각하여 중생들을 푸성귀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어떤 덕으로 이 사람들을 항복시킬까 세 가지 덕으로 하리라 생각하고 맹서하기를 나의 전생에 무수한 겁 동안에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였더라면 내가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예수를 하리라.
그때 육사의 무리는 다 모였고 사리불 혼자만 오지 아니 하니 육사가 왕에게 사뢰기를 구담의 제자는 두려워 여테까지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이 수달에게 말하기를 네 스승의 제자가 어째서 오지 않는가 하니 수달은 사리불에게 가서 꿇어앉아 말하기를 대덕이시여 사람들이 모두다 모여 있으니 오십시요 하였더니 사리불은 入定(입정)에서 일어나 옷을 고쳐 입고는 尼師檀(니사단)을 왼쪽 어깨에 얹고 나즉 나즉하게 걸어서 모든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갔더니 모든 사람과 육사들이 오신 것을 보고는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禮數(예수)를 하자 사리불은 수달이 만든 자리에 앉았다.
六師(육사)의 제자인 勞度差(노도차)는 환술을 잘하였기에 많은 사람들 앞에 나오더니 呪文(주문)을 외워 한 나무를 만들더니 즉시 나무 가지가 펴지면서 모든 사람을 가리워 덮으니 꽃과 열매가 가지마다 달리게 하였다. 사리불은 신력으로 가장 무서운 바람을 일으켜 그 나무뿌리가 뽑혀 굴러지고 뿌러져 가지가 꺽여 비치적 거리고 티끌 먼지가 되어 부서지거늘 모두 다 말하기를 사리불이 이겼다.
노도차는 또 주문을 외어 한 못을 만드니 4면이 다 칠보가 되고 가운데는 갖가지 꽃이 피어났다. 사리불은 여섯 어금니를 가진 큰 흰 코끼리를 지어내어 어금니 마다 일곱 연꽃이고 꽃 위마다 일곱 옥녀가 앉으니 그 못물을 다 마셔 버리니 모든 나무가 쓸어 지니 모두다 말하기를 사리불이 이겼다. 노도차는 또 한산을 만들어 칠보로 장엄하게 꾸미고 꽃과 과실을 다 갖췄더니 사리불은 금강력사를 만들어 금강저(막대기)로 멀리서 견주었더니 그 산이 하나도 없이 무너져 버리니 모두가 말하기를 사리불이 이겼다.
노도차는 또 한 용을 만드니 머리가 열 개이고 허공에서 갖가지 보배가 비 오듯이 내리고 우뢰와 번개를 쳐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사리불은 한 금시조(가루라)를 만들어 내어 잡아 찢어 먹으니 모두 다 말하기를 사리불이 이겼다. 노도차는 또 한 소를 만들어 내니 몸집이 크고 다리는 굵고 뿔이 날카롭고 땅을 후비며 소리를 치며 달려오거늘 사리불은 한 사자를 만들어 그 소를 잡아먹으니 모두가 말하기를 사리불이 이겼다.
노도차는 하다 못해 제 몸을 야차가 되어 몸을 길게 하고 머리 위에는 불이 붙고 눈은 핏덩이 같고 손 발톱과 어금니가 날카롭고 그 입에서 불을 토하며 달려오거늘 사리불도 몸소 毗沙門(비사문)의 왕이 되니 야차는 두려워 물러나 도로 달려 도망치려 하다가 4면에 불이 일어남에 갈 데가 없었으나 오직 사리불 앞에만 불이 없으므로 즉시 항복하고 엎드려 살려 주십시요 하고 빌면서 항복을 하니 불은 즉시 꺼지고 모두가 다 말하기를 사리불이 이겼다.
그때 사리불은 허공에 올라 걸으며 앉으며 누우며 하고 몸 위에는 물을 내고 동쪽에 숨었다 서쪽에 숨었다 동쪽에서 나와 북쪽에 숨었다 서쪽에서 나와 남쪽에 숨었다 북쪽에서 돋아나고 몸이 크게 되어 허공 가득 차도록 있다가 또 적게 되고 또 몸이 만 억 개의 신이 되어 있다 도로 하나가 되고 또 허공에 있다 땅에 있다 땅에서 땅을 밟되 물을 밟듯 하고 물을 밟되 땅을 밟는 듯 하고 이러한 변화를 보이고 난 뒤에 비로소 신족을 그만 두고 본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때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다 항복시킨 것을 기뻐함으로 사리불은 그때서야 설법을 하시니 저마다 전생에 닦은 인연으로 수다원을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사다함을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아나함을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아라한을 깨달은 사람도 있었다.
六師(육사)의 제자들도 모두다 사리불에게 돌아와 출가하였고 재주를 겨루고 난 뒤에 수달과 사리불은 精舍(정사)를 짓게 되었다. 두 사람은 손수 줄을 맞잡아 터를 재면서 사리불이 까닭 없이 빙그레 웃으메 수달이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대가 정사를 지으려고 터를 잡아 갓 시작하게 되었을 때 여섯 하늘에서 그대가 들어갈 집이 벌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하고는 道眼(도안)으로 수달에게 보여 주었더니 여섯 하늘에서 궁전이 장엄이 꾸며져 있었다.
수달이 묻기를 여섯 하늘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습니까? 사리불이 말하기를 아랫 쪽에 있는 셋 하늘은 번뇌가 많고 가장 위에 있는 두 하늘은 너무 게으르지만 편안하고 가운데 넷째 하늘이야말로 항상 좋은 곳이니 一生補處菩薩(일생보처보살)이 그곳에서 태어난 곳이며 法訓(법훈)이 항상 그치지 않는 곳입니다. 수달이 말하기를 내가 正(정)히 그 하늘에 태어나리라 하고 곧 그 말을 다하고 나니 다른 하늘의 집은 없어지고 넷째 하늘의 집만 보였다.
줄을 다른 데로 옮겨 터를 재더니 사리불은 측은한 낯빛을 짓고 있기에 수달이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대는 이 구멍의 개미를 보시요 그대는 전생에도 비파시불을 위하여 이 땅에서 精舍(정사)를 만들었으며 그 때에도 이 개미들은 여기에 살았습니다.
尸棄佛(시기불)을 위하여 이 땅에 정사를 만들 때에도 이 개미들은 여기에 살았으며 毗舍佛(비사불)을 위하여 이 땅에 정사를 만들 때에도 이 개미들은 여기에 살았으며 迦那含牟尼佛(가나함모니불)을 위하여 이 땅에 정사를 만들 때에도 이 개미들은 여기에서 살았으며 가섭불을 위하여 이 땅에 정사를 만들 때에도 이 개미는 여기에서 살고 있었으니 처음 여기에서 살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혜아려 보면 아흔 한 겁이 되니 저것들은 한가지 몸을 여의지 못하여 죽고 사는 것이 오래 되었오 아무리 복이 중요하다고 하나 심지 않으면 복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달은 그 말씀을 듣고는 몹시 슬퍼하였다. 수달은 정사를 이루고 굴도 만들고 전단향나무를 가루로 만들어 바르고 별실을 일천 이백 개나 되고 종을 단 집이 일백 스물 곳이나 되었다. 수달은 정사를 다 짓고 왕에게 가서 여쭈기를 내가 세존을 위하여 정사를 이미 지어 놓았으니 왕이 부처님을 초청하여 주소서 왕은 使者(사자)를 부르시어 왕사성으로 부처님을 초청하였다. 그때 세존님을 4중들이 에워싸고 있으니 부처님은 큰 광명의 빛을 펴시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부처님은 사위국에 오실 적에 수달이 지은 亭舍(정사)마다 들러시고 길에서 사람들을 제도하신 말씀은 그지없었다.
세존님은 사위국에 오셔서 큰 광명의 빛을 펼치시니 삼천대천세계를 다 비추시고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시니 땅이 진동하고 그 城(성)안에 있는 악기는 저절로 음악 소리를 내었으며 일체의 모든 병자들은 그 나라의 18억 사람의 병세가 다 좋아 졌다. 그러한 상서스러운 일을 보고 모두 다 밖으로 나오니 부처님께서 묘법을 설법하시니 제 각자 전생의 인연으로 수다원을 득한 사람도 있었고 사다함을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아나함을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아라한을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벽지불 인연도 지으며 無上道理(무상도리)에 발심 한 사람도 있었다.
부처님께서 후에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은 수달이 산 것이고 나무와 꽃과 과실은 祗陀(지타)가 내어놓은 것이니 두 사람이 어우러 정사를 지었으니 이름을 太子祗陀樹給孤獨園(태자지타수급고독원)이라 하라 하셨다.
수달이 정사를 지었을 때 부처님의 연세는 설흔 넷이고 목왕 8년 정해(기원전 994년)이였다. 부처님께서 항상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시며 사위국에 오랜 동안 오시지 않으시니 수달은 늘 그리워하며 서러워하더니 부처님이 오시니 뵙고는 여쭈기를 나에게 조그마한 것이라도 하나 주시면 항상 공양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머리털과 손톱을 베어 주시니 수달은 탑을 세우고 토굴도 짓고 여러 가지로 장엄히 장식하고 공양을 올렸다.
수달이 병들어 앓고 있으니 부처님께서 찾아가 보시고 아나함을 득 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니 목숨을 마치고는 도솔천에 들어가 도솔 천자가 되어 세존님을 뵙겠다고 생각을 하니 즉시 내려와 세존님을 다시 뵙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한쪽 옆에 앉으니 그때의 도솔천자의 몸에서 빛이 펼쳐지면서 지수급고독원을 다 비추고 게송을 지어 찬탄하고 즉시 숨어 버렸다.
[4]. 세존은 실라국에서 설법하셨다.
부처님께서 室羅國(신라국)의 王舍城(왕사성)에서 멀지 않는 지원정사에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진리의 4요체를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리의 正道(정도)를 알지 못하여 쉴새없이 오랜 세월로 生死(생사)에 헤매고 있느니라.
무엇이 진리의 4요체인가? 첫째,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苦(고)라고 한다. 둘째, 괴로움은 집착이 모여서 생기므로 集(집)이라 한다. 셋째, 괴로움과 집착이 다 없어진 것을 滅(멸)이라 한다. 넷째, 괴로움과 집착을 없애는 길을 道(도)라고 하느니라.
지혜롭지 못하여 괴로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쉬지 않고 오랜 세월로 생사의 길에서 헤매고 있느니라.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괴로움은 생겨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번민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五蘊(오온)으로 이루어진 이 몸은 모두 괴로움이다. 괴로움을 알고 애욕과 집착을 끊으면 慧眼(혜안)을 얻어서 이 생을 마치고 난 뒤에는 다시는 괴로움이 없게 되느니라.
애욕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나느니라 괴로움과 집착을 모두 다 없애기 위해서는 진리의 도를 수행하여 혜안을 얻으면 이 생을 마친 뒤에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게 되느니라. “진리의 도”로 혜안을 얻은 사람은 다시는 生死(생사)가 없어지느니라. 그리고 진리의 도를 얻으려면 여덟 가지를 수행해야 하느니라.
첫째, 마음을 다하여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 둘째, 애욕을 버리고 갈등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고. 셋째, 살생과 도적질과 음행은 저지르지 않아야 하고. 넷째, 남을 속이며 기만하거나 나쁜 말로 꾸짓지 않아야 하고 다섯은 질투나 남을 헐뜯지 말고 의심하지 않아야 하고. 여섯째 모든 것은 無常(무상)하고 괴로움이며. 空(공)하고 無我(무아)임을 생각하고. 일곱째 냄새나고 더러운 몸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고. 여덟째 탐욕에 집착하지 말며 몸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다 이 네 가지 진리를 알았고 앞으로 다가올 부처님들도 이 진리를 나타 낼 것이니라. 인간 세상은 은혜와 사랑이니라 탐욕하거나 혹은 부귀영화와 명예를 바라거나 오래 살기를 원하면 인간 세상을 벗어나는 도를 끝내 얻지 못하게 된다. 道(도)는 마음에서 생겨나느니라,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
마음을 청정히 하고 다섯 가지 계율을 범하지 않으면 천상에서 태어나느니라. 만약에 지옥,아귀,축생의 길을 끊으려 한다면 일심으로 여래의 가르침을 받들고 계율을 준수 해야 할 것이다. 여래는 지금 중생들의 생사와 해탈의 正道를 설명하였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잘 생각하여라.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실라국에 이르러 사위성 밖 어떤 나무 아래에 머물러 계시었다.
그곳의 바라문과 居士(거사)들은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오셨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모두다 모여들었다.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기 위해 앉으실 방석을 혹 어떤 사람은 물병과 등잔을 가지고 와서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속의 사람들은 함부로 탐욕을 즐기게 되면 다섯 가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현상이 있느니라 스스로 방종하면 재산이 줄어들어 몸을 위태롭게 하고 사람의 도를 잃으면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으며 죽을 때에 뉘우치게 되며 더러운 소문과 나쁜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된다.
스스로 방종하면 죽은 뒤에는 삼악도에 떨어지느니라.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조절하여 항복 받게 되면 방종하지 않고 다섯 가지 덕을 갖게 된다.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게 되면 재산은 날로 늘어나고 뜻을 도와주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 사람들이 우러러 공경하고 죽을 때에도 뉘우침이 없으면 그의 덕망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느니라.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한 사람은 죽은 뒤에는 복된 곳이나 천상에서 태어나느니라. 사람이 방종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좋은 일이 있으니 잘 생각하여 행동하라. 부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위하는 가르침을 펴시니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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