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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시대에 적용될 정역

지구대변혁으로 4계절이 없어진다 박병역기자(truelook@hanmail.net) 2010.07.22 13:46:53



 

후천시대에 적용될 정역

 

정역시대 도래를 선언한 대철인 김일부

"오호라! 문왕 이후 3천년의 공업이 艮方(간방)의 한 모퉁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이루어 질 줄을 그 누가 알 수있으리오. 태호복희 황제의 8괘도 3천년에 나왔고, 문왕 8괘도 3천년에 나왔다. 또다시 3천년 변역기를 맞아 이제 정역 8괘도가 세상에 나옴으로 인하여 천수상(天垂象) 물수형(物受形)하는 우주 원리는 변화의 모습을 노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도다.

복희8괘[상생]

문왕8괘[상극]

정역8괘[천인공생]

 

황제헌원 이후 5천년 역사동안 수수께끼였던 황재내경은 드디어 그 비밀의 장막을 거두게 되고 5운 6기의 음양법칙은 드디어 상과 수의 비밀을 밝히는 역군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즉 김일부 대철인은 3천년 마다 8괘가 바뀌는 천리에 의하여, 야훼하느님과 사람들이 공생하는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때가 도래하여 드디어 동방의 대한민국에 대성인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누가 지상의 용화낙원 세상을 지금 보겠는가?.

 

우주의 조화 세계를 고요히 바라보니 야훼 하느님의 조화공덕이 사람으로 다시 내려 오시는 상제님을 기다려 이루어짐을 그 누가 알 수 았으리요. 천지의 맑고 밝음이여, 일월의 새 생명이 빛나도다. 일월의 새 생명 빛남이여,... 낙원세계 되는구나..! 개벽세계여, 아.. 새 세계여, 야훼 옥황상제님께서 성령의 빛을 뿌리며 친히 강세하시도다. (正易)

 

김일부(金一夫)선생(1826∼1898)

김일부선생의 본관은 광산, 초명은 재락(在樂), 후명은 재일(在一), 이름은 항(恒), 字는 도심(道心)이요, 호는 일부(一夫)이다. 선생은 최수운 선생보다 2년 늦은 1926년 10월 28일에 부친 인노(麟魯)씨와 모친 대구 서씨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충남 논산군 양촌면 남산리 뒤의 오도산(五道山) 남쪽 당골의 한 고요한 마을이었다.

 

 선생의 풍모는 상당히 특이하여, 체격은 학을 닮아 키가 크고 야위었으며, 손을 드리우면 팔이 무릎을 넘고, 춤을 추면 흰 학이 공중에서 날개를 벌리고 춤을 추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한 목소리는 쇳소리[鐵聲]여서 노래를 하면 허공 높이 들리는 듯 했다고 전한다.

 

20세 전후에 첫부인 민(閔)씨와 결혼하였다. 소시적부터 글공부에만 열중하였던 선생은 가사를 일체 돌보지 않았던 까닭에 모든 살림을 아우인 채훈이 맡아 하였다. 그런데 그 아우가 29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하여 가세가 기울게 되자 부인 민씨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그 후 고종제인 권종하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다시 당골로 와서 둘째부인 박씨와 재혼하였다. 당골에서 회갑을 지낸 선생은 박씨 부인과 자녀를 거느리고 다오개 최생원댁으로 옮겨 왔다. 최생원은 외숙인 선생을 극진히 받들어 지성껏 공양하였다. 선생은 박씨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있었고,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이곳에서도 선생이 직접 살림에 관여하지 않아 그 부인은 추운 날에도 맨발로 짚신을 신고 다녔다고 전한다.

 

영가무도(詠歌舞蹈)

어려운 가정살림 속에서도 선생은 한번의 흔들림도 없이 진리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인품을 두고 후일 연담 선생은, “오도산(五道山) 아래 인계 북쪽에 한 선비가 있으니 이가 바로 유(儒)라. 호를 관벽(觀碧)이라 하니 사람됨이 박실하여 비록 속세에서 멀고 은미에 가까우나 그 가운데서 도를 즐기고 있다….”고 평하였다.

 

선생은 평소에도 의관을 바르게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결코 눕는 법이 없으며, 낮잠을 자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아침엔 항상 일찍 일어나고, 잠은 극히 단시간 자는데 그것도 앉은 채로 잠시 졸고 마는 때가 많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나 식사시에만 평좌(平坐) 하였다. 식사는 소량을 먹었고 만일 제사 음식인 경우에는 예를 표하고 먹었으며, 생강을 항상 먹었다고 한다. 술은 못하고 대신 담배는 많이 피워서 외출시 담뱃대는 필수품이었다. 떡을 즐기고(특히 호박떡) 육식은 하되 극히 피곤하면 보신탕도 드셨다. 선생은 일상생활에서 영가(詠歌)를 끊지 않고 손은 항상 무엇인가를 따지느라 구부렸다 폈다를 쉬지 않았다.

 

당골 앞에서 인내강을 약 10리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용바위가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밤새 가무(歌舞)하다가 새벽녘에야 갓에 서리를 허옇게 싣고 도포 자락이 찢어진 채 돌아오곤 하였다. 집안사람들이나 동리 사람들은 선생이 물가에서 도깨비에 홀려서 미친 줄 알고 옥추경을 읽은 적도 있다고 한다. 선생은 궁상각치우의 오음성을 차례로 ‘음아어이우'와 같이 불렀고 흥이 올라 자진 가락으로 나올 때는 오음중 ‘음아'를 반복하여 이웃 사람들은 음아 생원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번은 고종제(姑從弟)인 권종하(權鍾夏)가 찾아와 선생에게 노래 들려주기를 청하니, 당골산 으슥한 숲 속으로 가서 청아한 음성으로 오음을 내고 그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추니 선인(仙人)이 옥적(玉笛-청옥이나 황옥으로 만든 대금 비슷한 취악기)을 불고 학이 춤을 추는 듯하여 크게 감동하여 노래를 영가(詠歌)라 하고 춤을 무도(舞蹈)라 하였다. 그리하여 일부 선생의 노래와 춤을 영가무도라 칭하게 되었다.

 

연담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음

선생이 본격적으로 도를 추구하게 된 계기는 36세에 연담선생을 만나고 부터이다. 스승 연담 선생은 본명이 수증(守曾) 일명 운규(雲圭)로 흥선군과도 친밀한 사이였으며 일찍이 문참판(文參判)을 지낸 일도 있었으나 국운이 쇠락함에 낙향하여 연산(連山)에 은거하던 중이었다. 연담 선생의 학통은 이서구의 뒤를 이어 천문, 역산, 역학, 시문에 밝았으며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崔濟愚)와 남학의 창시자인 김광화(金光華) 그리고 일부선생이 연담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했다고 하였다.

 

연담선생이 하루는 수운 대신사와 김광화와 일부선생을 불러, 수운 대신사와 김광화는 각각 쇠하여가는 선도와 불도를 대표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니 주문을 외고 깊이 근신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부선생에게 그대는 쇠하여 가는 공부자(孔夫子)의 도를 이어 장차 크게 천시(天時)를 받들 것이니 이런 장할 데가 없다고 하며, 이제까지는 "너", "해라"고 말했으나, 이제부터는 "자네", "하소"라 하기도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예서(禮書)만 너무 볼 것이 아니라 서전(書傳)을 많이 읽으소. 그리하면 자연이 감동되어 크게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오 하였다. 그리고 후일 정녕 책을 지을 것이니 그 속에 나의 이 글 한 수만 넣어주소 하였다.

 

觀淡(관담)은 莫如水(막여수)요 好德(호덕)은 宜行仁(의행인)을, 影動天心月(영동천심월)하니 勸君尋此眞(권군심차진)하소. -맑음을 보는 것은 물만 같은 것이 없고 덕을 좋아하는 것은 인을 행함이 마땅하구나. 천심이 달 그림에 동하니 그대에게 권하건데 이 진리를 찾아보소 연담선생은 이 글 한 수를 남겨 놓고 연산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 선생은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그 후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정진을 거듭하여 드디어 주역을 탐구하여 정역 팔괘를 완성 하게 되었다.

 

선생의 공부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영가와 무도로써 정신을 계발하고 또 하나는 서전의 정독과 다독이었다. 일부선생이 영가무도를 할 때는 어찌나 열심히 하였는지 선생이 춤추던 자리에는 풀이 자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가무로써 심신을 단련하고 서전을 읽고 그리고 주역 연구에 정진하며 한시도 쉼 없이 지극한 일심으로 행하였다.

 

선생이 공부하는 심법을 후학에 전하니 다음과 같다. 성의정심(誠意正心)하야 종시무태(終始無怠)하면 정녕(丁寧) 아화화옹(我化化翁)이 필친시교(必親施敎)하리라.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처음이나 끝이나 게으름이 없이 정진하다 보면 정녕코 우리 야훼 옥황상제께서 반드시 친히 가르침을 베푸시게 되리라!

 

그리하여 36세부터 19년만에 影動天心月(영동천심월)의 진리를 찾을 수 있었으니 그때 선생의 나이 54세(1879)되던 해이다. 천심월의 행방을 찾아낸 후, 눈을 감으나 뜨나 환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정신이 맑고, 어찌된 일인지 눈앞에 이상한 괘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커지고, 천지가 모두 이 낯모르는 팔괘의 획으로 뒤덮여 보였다.

 

3년 동안 이 이상한 현상이 계속되었고 당시에는 너무 구도에만 열중하여 몸이 허한 줄로 알고 있다가, 주역 계사전에 공자가 우주의 새 시대가 개벽되는 새로운 팔괘도를 암시한 구절을 확인하고 선생이 56세 되던 해, 제3의 팔괘도인 정역 팔궤도를 그렸다. 정역 팔괘도를 획한 이후에도 각고의 노력 끝에 1884년 실로 황홀하기 그지없는 후천 우주 대개벽시의 신비한 『정역(正易)』을 완성시켜 놓았다.

 

김일부 선생의 정진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으니, 육신의 고통은 둘째 친다 하더라도 재혼한 박씨 부인과 그 자녀가 한 겨울에 맨발로 짚신을 신고 다니는 것을 못본체 해야 하는 그 마음고생이야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조소도 결코 적지 않았다. 후일 이 심경을 정역(正易) 구구음(九九吟)에 피력하기를 ‘육십 평생 미친 일부는 스스로 웃고 남이 웃으니 항상 웃음이 많구나. 웃음 속에 웃음이 있으니 무슨 웃음이 웃는 고 능히 그 웃음을 웃고 웃으며 노래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임종하기 전, 선생은 부인 박씨와 자녀들을 불러 앉히고 “내가 평생에 공부만하고 금전을 몰라서 집안이 이 꼴이 되었으니 너희들을 고생시킨 일을 생각하면 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성인의 일을 알아보느라고 그리 된 일이니 할 수 있느냐? ……."라고 유언하였다. 그의 일생은 그의 말처럼 성인의 뜻을 알고자 60평생 일관되게 걸었던 험난한 구도의 길 그것이었다. 선생은 60년 솔성지공(率性之工)을 마치고 임종을 맞이하였다.

 

1898년 11월 25일. 그때 그의 나이 만 72세였다. 정역(正易)은 일부(一夫) 김항(金恒)에 의해 1884∼1885년에 걸쳐 완성됨. 정역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후천시대에 적용될 역이다. 장차 지구 자전축이 정남정북으로 정립하고 지구 공전궤도가 정원으로 바뀐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으며, 또한, 우주의 통치자인 상제님이 지상에 친히 강세하여, 후천 개벽 세계를 열어 놓는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지구대변혁으로 4계절이 없어진다

 

태양은 하루에 약 1°씩 황도를 따라 별자리 사이를 움직여서 한 달에 한 궁씩을 지나가며, 1년 365일에 한 바퀴를 도는데, 기온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따라서 3개월로 묶어서 4계절이 순환하고 있다. 그리고 황도와 적도가 이루는 각을 황도 경사라 하는데, 황도는 하늘의 적도와 약23.5°기울어져 돌고 있기 때문에 4계절이 생긴다.

 

좌편 12지지의 모형은 360도의 둥근 一圓(일원)으로서 지구와 같으며 子(자)와 丑(축)의 각도는 30도를 이루고 있다.

또한 각각의 地支(지지)도 30도로서 합하면 360도가 되며 남북은 곧 子午線(자오선)과 같고 지구는 서북쪽으로 23도 7부로 기울어져 있다. 곧 丑未(축미)의 기울어진 각도가 地軸(지축)의 27도 6부와 동일한 것이다. 단 하나의 12지지도표로서 광활한 우주의 비밀은 물론 천지인(天地人)의 생성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 행

음 양

십 간

십이지

辰戌

丑未

數(수)

3

8

7

2

5

10

9

4

1

6

방위

東(동)

南(남)

中央(중앙)

西(서)

北(북)

 

十干(10간)은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이고,

十二地支(12지지)는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이다. 60갑자는 10개의 天干(천간)과 12개의 地支(지지)를 陽干(양간)과 陽支(양지)와 陰干(음간)과 陰支(음지)로 짝을 지어 나가면 60개의 干支(간지)가 나오게 된다.

 

10간 12지지로 원(○)을 그리면 일정한 궤도에 따라 운행하는 지구의 4계절 변화원리를 다 알 수 있다. 천지의 일체 만물은 10干과 12地支(지지)의 大三合(대삼합)에 따라 4계절이 바뀌고 중앙 5토는 조화를 이루어 끊임없이 4시가 순환하고 있다.

 

즉 하루의 4시와 일년 4계절은 60갑자의 十干(10간)과 十二地支(12지지)의 六合(6합)에 의한 순행으로 끊임없이 순환 운동을 하고 상생 상극의 작용에 따라 王衰(왕쇠)가 일어나고 길흉화복과 生成死滅(생성사멸)되는 것이다.

 

 

좌도의 남북은 곧 子午線(자오선)과 같고 현세 지구는 丑未(축미)의 각도로 地軸(지축)은 27도 6부로 기울어져 있으나 정역은 子午線(자오선)과 같이 바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곧 지구의 기후환경은 4계절이 없어지고 항상 봄과 같은 세상이 도래 한다고 예고했습니다.

2012년 12월 21일의 천문현상.

태양계의 은하정렬과 그랜드 크로스와

김일부의 정역과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류는 물고기자리(쌍어궁)를 지나 물병자리(보병궁)의 초기에 진입하는 변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 시기가 아래 그림의 지점으로 표시된 대로 2012년 12월 21일 경이라 주장했습니다. 곧 김일부 선생의 정역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이루는 일이 곧 지상에서 나타난다.

옛 선조님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여 지상의 이변을 짐작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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